그냥 내 멋대로 그저 계속 살아 버릴 테다. 아무 의미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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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셜록 주니어 Sherlock Jr.

셜록 주니어 Sherlock Jr.

버스터 키튼 (Buster Keaton) | 1924 | 35mm | 45min. | 미국 | b&w silent


영화 처음에는 솔직히 아무것도 몰랐다. 지난 학기 사회학 입문 선생님께서 찰리 채플린은 자신이 살고 있던 -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로 살고 있는 - 근대 자본주의 기계문명의 모순을 아주 그냥 제대로 끄집어낸 이른바 천재라고 극찬하신 적이 있다. 나는 - 이렇게 말하면 무식함이 탄로 나지만 - 솔직히 고등학교 때까지는 찰리 채플린은 미스터 빈 정도의 코미디 배우인줄 알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천재였다니! 라고 혼자 뿌듯해 하며 교양이 늘었음을 속으로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얼마 후 채플린의 《살인광 시대:Monsieur Verdoux》(1947)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내용이 얼마나 심오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닥 재미는 없어서 실망했었다. 물론 《모던 타임즈》같은 작품은 더 나을 것 같기도 해서 함부로 채플린을 평가 하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지난 수업 시간에 본 초기 무성 영화들 역시 의미는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별 감흥을 주지는 못한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사전 경험들에 의해서 사실 나는 《셜록 주니어》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보게 되었다. 나는 그저 원래 20년대를 풍미하던 슬립스틱에는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않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초반에 great stone face를 내세우며 슬립스틱 연기를 펼치는 키튼의 모습을 나는 ‘뭐 그러려니, 다 예측가능 하려니, 진부하려니, 뻔한 스토리대로 흘러가려니, 니가 뛰어봤자 내 손바닥 안이려니’ 라는 무척 거만한 태도로 보고 있었다. 그, 러, 나, 이 페이지 맨 위를 장식하고 있는 키튼이 상영기를 틀고 잠들고 꿈속의 자아가 분리되는 장면부터, 나는 정신이 퍼뜩 깼다. 그리고 키튼이 2차원 평면 영화 스크린을 3차원으로 만들며 들어가는 장면에서(일본 공포영화 《링》은 《셜록 주니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틀림없다. 무려 80년이나 앞서는 연출력이 아니겠는가!) 나는 발밑에 떨어져있는 ‘겸손’을 허겁지겁 가슴속에 주워 담았다. 그리고 3차원 스크린 속에서 한없이 매끄럽게 바뀌는 배경에서 보여준 키튼의 자연스러운 슬랩스틱 연기는 슬립스틱 따위에는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던 나의 얼굴에 넘치는 감흥을 선사해 주었다. 그리고 키튼이 창문에 뛰어들어 변신한 부분과 오토바이를 타고 성룡 보다 낫다고 평가받는 스턴트 연기를 보여 줄때, 나는 키튼에게, 영화에 푹 빠져버렸다. 건방진 대학생의 모습은 온대간대 없이 영화에 몰입해 순수하게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굳이 건방진 마인드를 되새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근의 영화들도 나를 이렇게 까지 몰입시키고 자연스럽게 웃게 만드는 영화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심지어 거의 80년 전의 영화가 아닌가!

인터넷을 뒤져 보니 내가 느낀 웃음과 감흥을 한 영화평론가는 이렇게 평했다.

물리학의 법칙에 의거해 고도로 연출된 장면 효과로 인한 웃음, 이것이야 말로 키튼 영화의 묘미에 가깝다. - 김성욱(영화평론가)

어쩜 이렇게 내가 한 생각을 문장으로 명료하게 잘 표현했는지 참 기특하다. 이 사람의 평론에 따르면 키튼의 영화는 이러한 고도의 연출뿐만 아니라 채플린과는 다른 방식으로 근대 기계문명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했다. 채플린이 기계를 적대시하며 부조리를 폭로하며 휴머니티를 표현하는 반면, 키튼은 대규모 산업기계에 순응하면서 그 속에서 발버둥는 것으로 - 예를 들면 우연히 고도의 물리적 법칙에 의한 기계 문명속의 스턴트 장면 같은 것 - 웃음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키튼의 웃음에는 왠지 모를 슬픔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셜록 주니어》 맨 마지막 장면의 영화를 따라하는 주인공의 모습 역시 미디어와 우리의 삶을 비추어볼 때 너무 의미심장한 장면이 아닐 수 없으며 이러한 모습의 주인공의 결혼 성공 역시 웃기긴 하지만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결혼제도의 모순과 같은 슬픔의 시작이나 죽음을 암시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셜록 주니어》, 그저 그 존재와 상영 자체만으로도 나의 편견의 안개를 걷어주고 웃음을 선사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뿐만 아니라 상영 이후에도 나에게 이처럼 장면을 돌아보며 생각할 기회를 안겨주고 있으니 이 어찌 매력적이고 사랑스럽지 아니하리오. 참 즐거운 작품이었다.


처음 접하신 분을 위한 시놉시스(출처 | http://www.cinematheque.seoul.kr)

극장에서 영사기사로 일하는 버스터는 캐트린에게 구애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그러던 중 사랑의 라이벌 워드가 캐트린 아버지의 시계를 훔쳐 버스터에게 누명을 씌운다. 버스터는 영화 속 주인공인 셜록 주니어가 되어 진짜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by Anichuku | 2005/03/16 00:16 | 후기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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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수오스님 at 2005/07/07 00:52
이영화 어떻게 구해?ㅋ
Commented by 불량먹보 at 2006/04/14 23:11
저 시대에는 아마 작품 하나에 정말 인생을 바쳤겠지.
요즘은 오직 돈! 몸을 던지는 방향이 잘못된 것 같아 씁쓸하다.
Commented by 한동균 at 2006/05/26 23:58
류승완과 이명세, 피터 잭슨이 왜 키튼을 극찬하는지 몰랐었는데.. 많은것을 찾으셨네요..ㅋ 전 제너럴 보고 왜 극찬을 받았는지 이해 못했었는데..ㅠ
Commented by 형구 at 2006/12/19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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